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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비게이션 답지 않은 내비게이션: 슬로우로드

집 근처인 안양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보았다. 출처:네이버 지도 캡처

 

내비게이션은 길을 알려준다.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는 것은 내비게이션의 목적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 실시간 교통정보, 도로통행료 정보 등 다양한 정보들이 이 한 화면 안에 녹아들어있다. 하지만, 최근 내비게이션도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춘 내비게이션 답지 않은 내비게이션 '슬로우로드'를 소개한다.

 

제주도 여행만을 위한 티맵의 내비게이션 '슬로우로드'

지난 31일, 티맵이 제주도를 위한 새로운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슬로우로드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서비스는 티맵뿐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관광공사, 제일기획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졌다. 슬로우로드 서비스는 제주공항, 중문, 서귀포, 성산 등 제주도 내 7개 권역을 연결해주는 50개 경로를 제공하며, 여행객들이 경로를 선택하면 티맵으로 안내해준다.

 

비짓제주를 통해 이용할 수도 있다. 이건 맛보기. 출처: 비짓제주 캡처

이 경로들은 모두 우회로이다. 제주도청과 제주관광공사의 관광 데이터를 기반으로 목적지로 가는 길 주변에 위치한 관광 명소와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들을 들리도록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제주공항에서 성산일출봉으로 이동할 경우 일반 내비게이션은 주로 97번 도로(번영로)와 1119번 국도(서성로)를 지나는 빠른 길을 추천하지만, 슬로우로드는 아침미소목장, 한라생태숲, 안돌오름 등을 경유하는 경로로 안내해준다. 이 경로는 빠른 길보다 목적지까지 40여분 더 걸리지만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을까?

 

77.7%

내비게이션을 통해 관광 명소를 소개한다는 것은 듣기에는 그럴싸 하지만, 사실 아직 다른 도시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도전이다. 서비스 개발에 꽤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자되야할 뿐더러, 이에 따른 효율성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을 가능케 한 제주도 관광만의 특징에 있다. 바로 관광지로 유명한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 높은 렌트카 이용률이다. 육지와 이어지지 않은 섬이기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제주도를 방문하는 내국인 관광객의 77.7% 렌트카를 이용하고 있다.(2020년 제주관광공사 설문 결과) 이러한 높은 렌트카 이용률은 내비게이션을 통한 관광 명소 소개 서비스가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오른쪽에 교통수단의 77.7%가 렌트카인 것이 보인다. 출처:제주관광공사

 

관광객 분산 목적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지금,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최고의 선택이자, 외국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현재 하루 평균 3만3800여명의 관광객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 이전 동일 시기의 90%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사실상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국인 관광객 수는 훨씬 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주도 입장에서는 행복하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관광업 고사 위기는 넘길 수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광객 중 간간히 코로나 확진 소식이 들려오며, 제주도민들의 불안은 더욱 높아졌다.

 

이틀 전 신문 기사 출처: 한겨례신문

 

이번 '슬로우로드'는 이러한 관광객들을 분산 시키는 것에 어느 정도 목적을 두고 있다. 유명 관광 명소로 거의 같은 시간대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도 전역의 숨은 명소로 사람들을 분산하려는 노력하는 제주도의 숨은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왠지 행동경제학의 명저 넛지의 소변기 속 파리 예시가 생각난다.)

 

기대가 되는 마케팅 사례

활용되기 좋은 소비자 환경과, 은근슬쩍 의도한 행동심리학까지. 잘 짜여진 마케팅임이 분명하다. 이에 더불어 해당 서비스의 주체 중 하나인 제주관광공사의 말에 따르면 SNS 해시태그, 검색량 등을 분석한 빅데이터 기술 또한 활용되었단다.(왠지 다른 주체인 제일기획이 했을 것 같긴 하다.) 실제 이 글을 쓰기 위해 서비스를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디테일하고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테마들이 제주도의 각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꼭 내비게이션으로서가 아니라 테마에 맞는 정보를 얻는다는 목적만으로도 꽤 활용도가 높다. 제주도를 여행하고 있거나 여행할 사람들은 한 번 이용해볼 만한 서비스.

 

 

이건 진짜...... 3주전에 제주도에 갔다온 글쓴이도 다시 가고 싶게 만든다. 출처: 비짓제주 캡처

 

글쓴이: 이재원

poom1008@naver.com